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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재가 노래하는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작가 델리아 원스의 첫 작품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습지를 공간적 배경으로 해서 한 인간의 자존과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인 카야와 카야가 만났던 두 남자인 테이트와 체이스가 등장합니다. 이 작품을 읽고 카야에게 있어서 습지의 의미가 무엇인지와 테이트와 체이스의 본질적인 차이, 그리고 탁월한 서술기법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카야에게 있어서 습지의 의미

    이 소설의 제목은 가제가 노래하는 곳으로 카야가 평생을 살아왔던 습지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사실상 고아가 된 그녀에게 습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에 습지는 어린 카야에게 있어서 일종의 은신처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부모와도 같은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특히 카야를 괴롭히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학교에 데리고 가려는 복지 교사로부터 숨겨주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카야는 음식을 구해야 했고 돈도 필요했는데 그 자원을 다름 아닌 습지에서 구해왔습니다. 결국 이 시점에서 습지는 카야에게 생존을 넘어 생계 수단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로 다가오게 됩니다. 처음엔 단순히 은신처의 의미였지만 카야가 습지에 적응해 나가면서 습지는 그녀에게 학교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카야는 습지에 살면서 학교 정규 교육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지식들을 습득하게 됩니다. 물이 들어오고 빠지는 시간, 습지의 동식물들에 대한 지식들이 그것입니다. 카야는 습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것은 나중에 평생을 살아갈 때 힘이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습지는 직장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카야가 테이트의 도움으로 책을 내기 시작하면서입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습지로부터의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그녀는 여러 권의 책을 냈고 습지에 있어서는 일종의 권위자가 됩니다. 이 시기에서 습지는 카야의 생존, 생계를 이어주는 수단을 훨씬 넘어서 그녀의 자아실현을 장으로 기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테이트와 체이스의 본질적인 차이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카야가 만났던 두 남자, 테이트와 체이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너무나 상반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카야에 대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한 테이트와 달리 체이스는 단지 그녀의 몸만을 탐할 뿐이었기에 두 사람 간에는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테이트와 체이스 사이에는 카야를 대하는 것에서 좀 더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테이트는 카야를 단순히 연인으로만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성숙한 인격체로 독립된 자아를 가진 존재로 대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특히 그는 카야의 자립을 돕기 위해서 그녀가 가진 습지에 관한 지식을 활용해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이는 주요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여러 번의 책을 낸 작가가 될 수 있었는데 이는 테이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아 습지에서 혼자 살 수밖에 없었던 카야에게 있어서 이런 테이트의 세심한 보살핌은 분명 도움이 된 것입니다. 이번에도 테이트는 자기가 돌봐주겠다고 말하지 않고 카야가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체이스는 카야가 스스로 자립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돌봐주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할 때 카야를 찾았습니다. 반대로 카야가 그를 필요로 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나중에는 그녀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립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테이트가 카야에게 보여주는 것은 홀로서기라면, 체이스가 보여주는 것은 홀로 두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두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가 겉으로 보이는 차이보다 더 큰 차이로 느껴지게 됩니다.

    탁월한 서술기법

    이 소설은 다양한 장르를 보여주고 있는데, 체이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스릴러 장르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카야의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와 테이스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구성이며, 서술 기법의 탁월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독자들은 카야의 어린아이 시절부터 이야기를 따라가기 때문에 불우한 카야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나중에 못된 체이스를 만나는 장면부터는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기 어렵게 됩니다. 이 때문에 교차적으로 체이스 살해범을 추적해 나가는 부분을 읽으면서도 체이스에게 동정심을 가지지 않고 용의 선상에선 카야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건의 서술 시점을 교차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체이스를 살해한 사람이 카야일 리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카야가 제시하는 알리바이를 신용하고 검사 측이 제시하는 증거들은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기각되고 맙니다. 작가 델리아 원스는 이 재판의 또 다른 배심원들인 독자들의 심리를 완전히 지배하면서 카야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도록 만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반전 있는 이야기는 독자들을 놀라게 만들어 줍니다. 문학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대개 선한역이든 악역이든 간에 주인공에게 몰입하여 심정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델리아 원스는 이런 독자들의 심리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 소설의 재미를 한층 더한 셈입니다. 평생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다가 70이 다 된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이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가는 완벽한 서술 기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