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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

    소설 향수는 2천 년대에 발표된 밀란쿤데라의 작품입니다. 제목인 향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알아보고 인간의 향수를 구성하는 요소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향수의 줄거리

    1989년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이 줄줄이 붕괴하는데 체코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21년 만에 맞는 자유화의 바람이었습니다. 소련군의 진주로 혹독한 공산주의 독재가 시작되면서 프랑스로 망명했던 이레나는 고국인 체코에 가봐야 하지 않냐는 주변의 압박을 받습니다. 이레나는 망명 당시 엄마의 남자친구였던 마르틴과 결혼했고 그들은 외국인으로서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고생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던 중 마르틴은 사망하고 그녀는 마르틴의 스웨덴인 친구 구스타프와 연인 사이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이레나는 굳이 고국을 방문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녀의 프랑스인 친구들은 고국 방문을 기정사실화했했습니다. 구스타프마저 프라하에 회사 사무소를 내도록 제안했다며 체코에 가자고 합니다. 이레나는 자신의 삶의 터전은 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불만을 가지면서도 체코로 향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체코 친구들을 만난 그녀는 친구들에게 와인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체코 사람이라면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친구들의 말에 이질감을 느낍니다. 한편 이레나는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들른 파리 공항에서 조제프라는 남자와 제회하고 반가워합니다. 조제프는 그녀가 10대 시절에 미묘한 관계에 있던 남자였습니다. 그와 헤어진 이레나는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한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조제프 역시 체코를 떠나 덴마크의 망명 생활을 하면서 결혼까지 했지만 아내를 잃었었고 파리를 경유해 체코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제프는 이레나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반갑게 대하는 그녀를 기억하는 척하고 이레나에게 체코에서 보자며 자기 호텔을 알려줍니다. 프라하공항에서 이레나와 헤어진 조제프는 자기 고향인 체코의 시골로 향하고 의사인 형을 만나러 갑니다. 조제프의 형수는 오랜만에 조제프를 만났지만 과거 그의 망명으로 당국이 핍박을 받은 것을 떠올리며 그를 따뜻하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다시 형을 방문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호텔로 돌아와 과거 체코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 조제프는 그의 옛 친구인 앤을 방문하고 그 방문을 통해 공산주의 체코와 지금의 체코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얼마 후 이레나에게서 연락이 오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와 만나기로 합니다. 두 사람은 각각 프랑스와 덴마크에 애착을 가진 망명객 출신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조제프의 호텔로 옮겨 사랑을 나눕니다. 사실 이레나는 죽은 전 남편 마르틴이나 현재 연인 구스타프 모두 자신의 능동적인 선택의 결과로 얻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0대 시절의 연인인 조제프에게서 새로운 느낌을 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나누고 나서야 조제프가 전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레나는 분노에 울다가 지쳐 잠이 들게 됩니다. 조제프는 잠든 이레나를 두고 호텔을 떠나버립니다.

    인간의 향수를 구성하는 요소

    사전적으로 향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정서를 의미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장소에 대해서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향수는 단순히 장소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레나와 조제프를 통해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레나와 조제프는 오랜만에 체코로 돌아왔지만 그들은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하고 도리어 어색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들이 체코를 고향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주된 이유이긴 했지만 향수는 장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향수가 장소만의 문제였다면 그들을 체코로 옮겨 놓았을 때 평안한 감정을 느끼며 향수가 해소되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향수는 자신이 그리워하는 장소와 거기에 연관된 추억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향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장소와 추억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레나의 경우에 체코에 돌아와서 내내 불편한 감정을 느끼다가 조제프와 만나는 그 순간만큼은 편안해집니다. 이는 그녀의 향수가 해소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제프와 만나는 그 장소 그리고 그와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레나가 조제프와 잠자리를 갖고 나서 그가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녀는 급격한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추억의 조건이 깨지자마자 이레나의 향수는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고향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만약 완전히 달라진 고향의 모습에서 어떤 추억도 되살릴 수 없다면 몸은 고향에 있을지라도 향수는 해소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향수를 구성하는 요소가 장소의 불일치와 추억의 부제 두 가지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레나와 조제프 모두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체코의 공산정권이 수립되자 타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 후로 21년이 지나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자유화의 바람이 불자 이레나와 조제프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압박을 받습니다. 드디어 고국이 해방되었으니 더 이상 외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늘 그리워하던 체코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이레나의 경우에는 절친한 프랑스인 친구 실비와 연인 사이였던 스웨덴 사람 구스타프로부터 조제프는 덴마크인 아내로부터 이런 압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레나와 조제프는 이미 오랜 시간 거쳐온 망명 생활의 결과로 얻은 지금의 삶이 결코 싫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조국은 더 이상 떠나온 체코가 아니라 각자 자리 잡은 프랑스와 덴마크였던 겁니다. 하지만 이레나와 조제프에게는 공산주의 정권을 피해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난 망명객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체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는지 의도적으로 자신의 망명 생활을 묻지 않는 체코 친구들에 대해 이레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녀가 외국에서 무얼 했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이 여자들은 그녀에게서 20년간의 삶을 잘라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프랑스의 망명 생활 역시 자신의 소중한 인생이었고 자신을 설명하는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에 이런 태도와 반응은 자신의 일부를 도려내는 듯한 폭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어떤 존재로 이름 붙이는 순간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나 반응을 우리도 모르게 요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레나와 조제프에게 주변 사람들이 요구한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조국을 등져야만 했던 비운의 주인공들이었던 겁니다. 작가 밀란 쿤데라 역시 망명 작가라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있었고 비슷한 편견에 시달렸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레나와 조제프의 입을 통해서 더 이상 자신을 비롯한 이민자들에게 편견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