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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도살장

    1969년에 발표된 제5 도살장은 커트 보니것의 대표작입니다. 작가 자신이 경험한 드레스덴 폭격을 배경으로 하여 전쟁의 반인륜적인 모습을 고발합니다. 다른 반전 소설이나 전쟁 소설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시점이 뒤죽박죽 되어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작품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등장인물, 줄거리, 감상평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5 도살장 소개, 등장인물

    제5 도살장의 작가 커트 보니것은 1922년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조상은 독일계 이주민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보니것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자유분방함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커트 보니것은 대학에 재학 중이던 시절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그 유명한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됩니다. 포로가 된 그는 동부 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 드레스덴으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때 드레스덴 폭격을 목격합니다. 드레스덴 폭격은 나중에야 그 참상이 알려졌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제5 도살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보니것의 작품들은 풍자와 블랙 코미디 그리고 공상과학이 뒤얽힌 독특한 장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욘슨이라는 사람이 작가로 등장하고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 소설을 씁니다. 욘슨이 쓴 소설의 주인공은 빌리 필그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한 그는 위어리, 더비, 나자로 등의 전우들을 만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발렌시아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딸을 하나 낳는데 이름이 바버라라고 합니다. 이들이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입니다.

    줄거리

    욘슨이란 남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작가로 드레스덴 폭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그는 이를 위해 과거에 같이 전쟁에 참전했던 전우인 오헤어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당시를 회상합니다. 오헤어의 부인인 메리는 욘슨이 전쟁을 미워하는 작품을 쓸 것을 우려해 그를 냉대합니다.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런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욘슨이 쓴 소설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참전 용사였습니다. 제대 후 검안사로 살아가다가 비행기 사고를 당해 유일한 생존자가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이 과거에 트랄파마도어라는 곳에 외계인에게 납치되었고 시간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고 주장합니다. 주인공 빌리가 시간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음에 따라 소설 역시 시점이 오가며 진행됩니다. 빌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중병으로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아버지가 사망해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휴가가 끝난 후 그가 배치된 곳은 빌기의 전선이었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큰 타격을 입은 나치 독일이 벌지 전투로 강하게 반격해 오던 시기였습니다. 빌리는 위어리 등과 함께 정찰을 나갔다가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포로가 됩니다. 그들은 가진 모든 것은 털린 채 끌려가게 됩니다. 빌리 등 많은 미군 포로들은 포로 수송 열차에 태워져 독일 동부 수용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느릿느릿 10일이나 걸리는 여정은 처절했습니다.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차 안에서 볼일까지 봐야 하는 상황은 힘겨웠습니다. 위어리는 그 열차 안에서 사망하고 맙니다. 마침내 수용소에 도착한 빌리는 같은 포로인 에드가, 더비, 폴, 나자로 등과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있던 빌리는 모르핀을 맞으며 관리를 받습니다. 얼마 후 미군 포로들 일부는 드레스덴으로 보내져 강제 노역을 하게 됩니다. 당시 드레스덴은 전쟁과 상관없는 평화로움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빌리와 더비, 에드가는 드레스 덴의 오번 도살장으로 보내집니다. 육류를 생산하려는 노력을 약 한 달 동안 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몰래 훔쳐 먹기도 하며 지내게 됩니다. 한편, 나치 독일에 협조하고 있는 미국인 장교 캠벨이 미군 포로들에게 나타나 독일에 협조해 공산주의 소령과 싸우자며 회유를 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 드레스덴은 연합군에 의해 무차별 폭격을 당하게 됩니다. 빌리 등 미군 포로들은 지하 고기 저장소에 대피해 목숨을 건집니다. 연합군은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소련군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소련군의 진군을 돕기 위해 동부의 대도시 드레스덴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날 밤의 폭격으로 약 13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희생되었습니다. 엘베강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은 폐허가 되고 맙니다. 겨우 목숨을 건진 빌리 등은 도시 이곳저곳 폐허에 묻힌 시체들을 찾는 수색 작업에 동원되었습니다. 드레스덴 폭격이 있고 얼마 후에 전쟁이 끝났습니다. 빌리는 미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보훈병원 신세를 지며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 후 그는 발렌시아라는 여자와 결혼하고 검안사가 되어 살아갑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바버라라는 이름의 딸이 태어납니다. 시간이 흘러 바버라의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빌리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에게 납치되고 맙니다. 그 외계인들은 시간을 초월해 모든 시간대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빌리에게 시간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빌리는 이 능력을 얻고 나서 어떤 존재든 어느 시점에서 살아있기 때문에 완전히 죽은 존재는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월이 흘러 빌리는 비행기 사고를 당하고 겨우 목숨을 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소식을 들은 아내 발렌시아가 급히 그곳으로 향하다 사고를 당해 사망하고 맙니다. 한편 빌리가 입원한 병원의 옆자리에는 럼포드라는 노 교수가 함께 입원해 있었습니다. 드레스덴 폭격에 대해 관심을 가진 그에게 빌리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합니다. 빌리는 얼마 후 퇴원해 한 방송사에 자신이 시간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는 편지를 쓰고 방송에도 출연하지만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감상평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 욘슨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인 빌리 필 그림은 상당히 특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의 납치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빌리가 그 외계인들에게서 습득한 능력은 시간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그는 이 능력을 얻으면서 죽은 사람도 어느 시점에는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죽음을 대할 때마다 '뭐 그런 거지'라는 촌평을 하는데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죽음에 이 말을 꼭 덧붙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뭐 그런 거지에 담긴 화자의 정서가 안타까움이나 체념이 아니라 무감각함이라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시간을 초월하게 된 빌리가 마침내 죽음마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짧은 문장에는 진한 풍자가 녹아 있습니다. 소설의 주된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인데 거기서 빌리는 같은 인간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늘 있는 일, 별건 아닌 것처럼 여기는 모습으로 그들 모두가 마치 뭐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이 문장은 시간을 초월한 능력을 얻게 된 빌리만이 쓸 자격이 있는 문장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비판 정신이 엿보입니다.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시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 외계인인 것처럼 행동하며 서로를 살해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작가는 이 짧은 문장을 통해 스스로를 초월적 존재라 여기며 서로를 무감각하게 사육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또한 작가는 인간의 폭력성과 죄를 제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다루는 부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평범한 선동과 불황자인 줄 알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을 잘못 건드렸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모질게 대한 것을 후회했을 것이라는 건데 문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단 하나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얻은 교훈은 하나님의 아들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 다른 평범한 인간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건드리면 안 되지만 다른 평범한 인간들은 다른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차라리 이렇게 명시했다면 사람들끼리 서로 조심히 대하며 폭력적인 현실을 마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이 순간부터 아무런 연줄 없는 불황자를 괴롭히는 자는 누구든 무시무시한 벌을 받을 것이다. 작가가 가정한 이 새로운 도덕률은 두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연줄 없는 불황자를 괴롭히지 말라는 것으로 절대자와 관련 없는 평범하고 무력한 사람이더라도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무시무시한 벌을 받는다는 것을 부각해 도덕률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특징입니다. 작가 커트 보니것은 차라리 인간에게 이렇게 명확하고 강한 도덕률을 제시하는 쪽이 서로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는 길이 아니겠냐는 지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상징적인 교훈을 통해서는 인간의 폭력성이나 죄를 다스릴 수 없는 것 아니겠냐는 의미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문장을 통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구체적이고 무시무시한 도덕률이 필요한 존재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반전 소설로서 이 작품에 묘사된 전쟁의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커트 보니것의 이 작품은 대표적인 반전 소설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다른 반전 소설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전 소설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전쟁의 참혹한 참상을 마치 사진으로 보여주듯이 자세한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아니면 서사를 활용해 전쟁 통에 고통받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반전 의식을 고취시키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특이한 점은 이 두 가지 모두 배제하고 독자적인 스타일을 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전쟁의 끔찍한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주된 모티브가 된 드레스덴 폭격 사건도 매우 짧게 처리합니다. 그나마도 주인공 빌리가 고기 저장소 안에 대피해 있기 때문에 지상에서 버려졌을 상황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작가는 주인공 빌리가 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하지 않고 포로로 잡히는 스토리를 통해 은근하게 전쟁의 실상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독특한 방식으로 반전 소설을 만들어낸 이유를 작품의 앞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가지는데 소설 속 작가가 빌리 필그림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소설 속에 소설을 쓰는 형식입니다. 욘슨이 드레스덴 폭격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옛 전후 오헤어를 찾아갔을 때 그의 아내 메리는 욘슨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럼 전쟁은 그냥 멋지게 보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또 많이 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전쟁에 위층에 있는 애들 같은 어린아이들이 나가 싸우게 되겠죠." 소설에서 전쟁의 모습이 너무 자세히 묘사되는 것 때문에 도리어 전쟁이 멋지게 보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욘슨은 극적인 요소를 소설에 넣지 않겠다고 메리에게 약속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볼 때 실제 이 소설의 작가인 커트 보니것은 기존 반전 소설의 문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전쟁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